【명차 이야기 ⑫ 도요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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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차 이야기 ⑫ 도요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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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8.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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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창업한 도요타자동차는 한 해 500만 대 이상의 차를 만드는 세계 5위 메이커다. 도요타는 높은 품질과 경제성으로 일본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1988년 출범한 렉서스는 큰 성공을 거두어 미국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한편 세계에서 처음으로 휘발유와 전기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를 양산하는 등 기술력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 도요타가 직판체제로 진출해 LS430 등 5개 차종을 판매하고 있다

1933년 창업한 도요타자동차는 한 해 500만 대 이상의 차를 만드는 세계 5위 메이커다. 도요타는 높은 품질과 경제성으로 일본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1988년 출범한 렉서스는 큰 성공을 거두어 미국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한편 세계에서 처음으로 휘발유와 전기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를 양산하는 등 기술력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 도요타가 직판체제로 진출해 LS430 등 5개 차종을 판매하고 있다
도요타는 일본 제일의 자동차 메이커이면서 전세계 자동차시장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믿음직한 차로 도요타가 꼽히고, 고급차 디비전인 렉서스는 젊은이들의 드림카로 자리 잡았다. 도요타의 생산방식은 ‘린 프로덕션’이라고 해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론으로 정립되었다.
1964년 등장한 카롤라는 폭스바겐 비틀, 포드 모델 T와 함께 세계 3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두 차는 이미 단종되었지만 카롤라는 여전히 생산되고 있어 판매부문에서는 1위에 올라서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렉서스의 인기가 하늘을 찔러 국내에 들어온 지 2년밖에 안되었음에도 BMW에 이어 판매 2위를 달리고 있다. 창사 70년을 맞이한 세계 제일의 자동차 기업 도요타를 만나 보자.

★ 1935년 크라이슬러 본떠서 만든 AA가 첫 작품

도요타의 시작은 섬유기계를 만들어 성공을 거둔 발명왕 도요타 사키치(豊田佐吉, 1869~1930)에서 비롯된다. 가업을 이은 아들 기이치로(豊田喜一郞, 1894~1952)가 1933년 자동차 사업부를 만든 것이 도요타자동차의 시발점이 되었다.
1920년대 일본은 미국차 세상이었다. 1925년 설립된 일본 포드와 이듬해 세워진 일본 GM은 연간 2만대 이상의 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메이커는 연간 300~400대를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기이치로는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공장을 둘러보고 외제차를 뜯어보면서 열심히 자동차를 익혔다. 1930년 경영권을 이어받은 그는 1933년 자동차부를 신설해 자동차회사로서 첫출발을 한다.
이 무렵은 일본 자동차산업의 태동기로, 정부의 국산차 장려정책에 따라 이스즈와 닛산의 전신인 도쿄자동차공업과 자동차제조가 주식회사로 출발했다. 기이치로는 1930년 미국차를 바탕으로 2기통 엔진을 만들고, 2년 뒤 프로토 타입을 제작했으나 품질이 뒤떨어져 양산할 수가 없었다.
1935년 미국차를 기본으로 차를 다시 만들었다. 당시 유선형 디자인을 자랑하던 크라이슬러 에어플로를 본뜨고, 4기통 3.4ℓ 45마력 엔진을 얹은 차로 모델명은 AA형이었다. 양산모델은 이듬해 4기통 3.0ℓ 엔진을 얹고 등장했다. 시보레제 섀시와 트랜스미션을 얹은 차였다.
1937년 도요타자동차공업(주)이 독립해 현재 나고야 근처의 고로모에 대형공장을 세운다. 여기서 1942년까지 시보레 1.5톤 트럭을 생산했다. 뒤이은 중일전쟁과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요타는 군용트럭을 만들었다. AA 이후 중단된 승용차 생산은 47년 재개한다.
일본의 2차대전 패배는 자동차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1947년 도요타는 승용차 SA를 발표했으나 미국차와 경쟁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적자가 누적되어 50년 봄 도산 위기를 맞았고 파업사태까지 겹쳐 도요타 기이치로는 사장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또 주거래 은행은 관리하기 편하도록 도요타자동차를 제작과 판매부분으로 독립시켜 다른 회사로 운영하게 했다.
쓰러져 가던 도요타를 기사회생시킨 것이 한국전쟁이었다. 미군은 한국전쟁이 장기화되자 가까운 일본에서 군용트럭을 조달하기로 하고, 새로 발족한 경찰 예비대와 함께 도요타에 1천대씩의 트럭을 주문했다. 기이치로가 사장직에서 물러난 지 2주만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사장 복귀설이 나돌았으나 기이치로는 1952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 세계 3대 베스트셀러에 오른 카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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