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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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
  • cartech
  • 승인 2002.01.0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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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본지 기술자문위원

미국 휠얼라인먼트 노하우 전수받다

본지 기술자문위원인 박병일 사장이 미국

센트루이스에 있는 휠얼라인먼트 전문 회

사인 헌터사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왔다. ‘아

직 국내에서는 체계적인 휠얼라인먼트 교

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공부를 할수록 벽에

부딪쳤다’는 그는 미국의 체계적인 교육시스

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박병일 사장에 게 미국 휠얼라인먼트 연수 체험기를

직접 들어 보았다


남들이 인정하는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처음 시작하는 사람보다도 몇 배나 힘이 드는 법이다.

본지 기술 자문위원인 박병일 사장은 본인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본격적인 정비 시승 문화를 본지와 함께 열었던 박 사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정비 전문가. 하지만 그도 휠얼라이너 시스템과 휠얼라인먼트 작업에서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욕심 많은 정비사다.

바로 그 욕심이 박병일 사장을 미국 연수까지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휠얼라인먼트 공부할수록

부족함 느껴져

본지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0년째 되어가고 있는 박병일 사장은 ‘정비사례’와 지금은 고인이 된 김종태 사장과 함께 연재했던 ‘릴레이 시승기’를 시작으로 국내 정비 시승 문화를 이끌어 가는 대표주자가 되었다. 박 사장은 엔진 분야, 김종태 사장은 자동차 하체 쪽으로 전문적인 정비 분석을 시작했던 이들은 김종태 사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변화를 맞게 되었다. 오래 경험한 현장 노하우와 이론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비문화를 바꾸고 싶어하던 김종태 사장의 빈자리는 그만큼 크게 느껴졌다.

“저도 섀시를 시작으로 정비를 했지만 엔진분야로 자리를 옮긴 후부터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아 김종태 사장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그때보다 많은 발전을 했죠.”

하지만 박병일 사장은 스스로 휠얼라인먼트 작업 기술의 부족함을 느껴 9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때 도쿄와 요코하마의 대형 서점을 두루 다니며 찾아낸 책이 ‘바퀴의 모든 것’이라는 책이다.

“그 책을 번역해 공부하면서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결국 2년을 더 노력해 책까지 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휠얼라인먼트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벽은 쉽게 없어지지가 않았다. 그 답답한 가슴을 풀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 해 본 결과 휠얼라인먼트의 원조가 미국 헌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헌터의 역사가 1946년부터였다는 소리를 듣고 당장 미국으로 날아가고 싶었으나 현실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일본 도쿄 모터쇼에서 DSP 400 센서 휠얼라인먼트를 보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구입해 공부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만들어졌다. 그 기계의 시스템에 다시 한번 반해 아시아 담당이었던 미국인 케네디와 스윔의 윤한기 사장, 이번 연수기간에 통역을 맡아주었던 최창섭 사장의 초청과 주선으로 드디어 미국 헌터사에서 연수 교육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직접 보고 확인하는

현장학습 교육

2주간의 미국 연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최소 필요한 교육만 받더라도 3개월이라는 미국 체류기간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기간을 단축시켜 2주 동안 대형차, 승용차 얼라인먼트와 휠밸런스 교육을 받았습니다.”

승용차 휠얼라인먼트 수업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되어 오후 4시 30분까지였다. 햄버거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다시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대형차 휠얼라인먼트 교육을 받으면 밤 11시. 더욱 힘들었던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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